설 연휴에 영화 <공조>를 보았다. 북한 경찰 현빈과 한국 경찰 유해진이, 비리를 저지르고 탈북한 경찰 간부 김주혁을 체포하려고 공조하는 내용의 액션영화였다. 영화는 현빈, 유해진 그리고 김주혁이라는 삼각형의 꼭짓점을 중심으로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돌아갔다. 김주혁의 비열한 연기도 좋았지만, 주목할 것은 그 역할이 ‘돈에 눈이 먼’ 북한경찰 간부라는 점이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영화 속에서 김주혁이 자신을 저지하려는 현빈에게 ‘공산주의의 멍청한 개’라고 말하며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데 멍청하게 살지 말라’는 대사를 했다. 자본주의에 눈 뜬 사람이 할 수 있는 정확한 지적.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그런데 현빈이 유해진에게 “우리는 공산주의 체제지만 똑같이 가난한데, 남한 너희들은 자본주의 때문에 빈곤차가 크지 않느냐며,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다를 게 있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을 때는, 돈에 지배받는 것과 이념에 지배받는 것에 고통이 뭐가 다를까 싶기도.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단일 국가를 얼마나 다르게 만들어 놓았는지 명확히 보여주는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다. 이념과 경제관념을 뛰어 넘어, 아직도 우리 부모님, 조부의 세대가 북한은 ‘빨갱이’라며 증오를 가질 만큼 아픈 상처다.
요즘 <명견만리>를 읽고 있다. 이 책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읽어낼 수 있는 몇 가지 안목과 지혜를 제시하는 책인데, KBS 다큐멘터리를 글로 묶어냈다. 이 책은 ‘인구’, ‘경제’, ‘북한’, ‘의료’ 4가지로 나누어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인구감소’, ‘실업’ 등의 이야기를 점층적으로 다뤘다. 여기서도 내가 주목한 것은 ‘북한’이라는 카테고리였다.
영화 <공조>와는 다르게 <명견만리>는 최근 북한이 시장경제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무진장 가난하기만 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명견만리>에서 말하는 북한의 변화는 좀 놀랍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북한은 시장경제로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변화하는 중이다. 아래로부터 시작된 변화의 중심에 장마당이 있다. 장마당을 이용하지 않는 북한 주민이 거의 없고, 많은 사람들이 장마당에서 장사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남한 탈북자 147명을 대상으로 2014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5퍼센트가 장마당에서 옷을 산 경험이 있고, 식재료를 비롯한 다른 생필품들도 장마당에서 대부분 구입한다고 답변했다.
이 변화에서 보아야 하는 핵심은 바로 북한 사람들의 경제적 행위다. -215쪽
국가에서 먹을 것을 주지 않으니, 사람들이 집안에 있던 물건을 마당에 풀어놓고 내다 팔면서 상행위가 시작되었다는 거다. 금지품목인 쌀, 옥수수 등의 곡물과 전자제품, 의약품 등도 팔렸다. 그래서 2003년에는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장마당을 공식 인정했고, 사람들은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개인의 생계를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장마당은 커졌고, 물물교환부터 시작해 시장이 형성되면서 적지만 자본이 순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에도 경제관념이 생겨나고 국가의 것이 아닌 내 것이 생기면서, 점점 ‘돈’이 제일 순위가 되는 세대가 생겨난다.
2015년에는 29세 이하의 장마당 세대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44퍼센트라고 한다. 부자 세력인 ‘돈주’가 생기고 나서, 2013년 평양에는 워터파크, 피트니트 센터, 고급 뷔페식당까지 생겨났다는 데, 새삼 놀랍다.
세계적인 투자가 짐 로저스가 주목하고 있는 지역은 동북아시아, 즉 한반도, 중국, 러시아 3국의 접경지역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이곳을 ‘기회의 삼각지대’라고 부르는데,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상권을 자리 잡아 가고 있다며, 우리는 북한을 지척에 두고 섬처럼 고립되어 그 기회를 못 가지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고 권한다. 아직도 북한은 핵무기를 실험하며 주변국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