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는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다. 강렬하진 않지만 잔잔하게 타오르며 천천히 식어가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인생은, 줄곧 초연한 어투로 슬픔을 감추고 객관적 사실만을 드러내며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1965년에 출간했을 당시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06년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판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부터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전 유럽에서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는 올해 초에 번역본이 나왔다. 이 소설은 “슬프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위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왔다.

 

주인공 스토너의 인생은 대학시절 친구 매스터스가 “세상에 나가면 곧 알 수 있을 걸세. 자네 역시 처음부터 실패자로 만들어졌다는 걸”이라고 예언하듯 성공적인 삶은 아니었다.

사랑했다고 믿었던 여인과 결혼했지만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그의 아내는 심지어 딸과 가까이 가지 못하게 스토너를 교묘하게 따돌렸으며,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교수가 되었지만 영향력 있는 지도자도 아니었다. 어느 것 하나 뛰어난 업적을 남기거나 이름을 남기지 못했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하고 나서는 그는 점차 ‘무표정하고 황량한’ 얼굴로 세상을 대했다. 상실감, 무감각, 무심함, 초연함 밑에 숨겨둔 열정이란 감정도 느끼기는 했지만,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열정이 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한 스토너의 삶이 방향을 바꾸게 된 계기, 죽기 전까지도 같이 있던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이다. 소설에서 자주 등장하는 책은 스토너의 삶의 기로에서 늘 결정적인 매개가 되었다.  


첫 번째는 농대생이었던 스토너가 교양 수업으로 들은 영문과 수업에, 문학에 매료된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소네트였다. 그는 점점 새로 알게 된 학문, 책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대학 도서관의 서가들 속에서 수천 권의 책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죽, 천, 종이로 된 책들의 퀴퀴한 냄새를 들이마시기도 했다. 마치 이국적인 향 냄새를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나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책을 한 권 꺼내서 커다란 손에 잠시 들고 있었다. 아직 낯선 책등과 표지의 느낌, 그의 손길에 전혀 반항하지 않는 종이의 느낌에 손이 찌릿찌릿했다. (25쪽)

 

스토너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과거와 망자가 현재의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흘러들어 오는 강력한 환상’을 본다. 그는 책이 주는 환상 속에 푹 빠져 농부가 아닌 영문과 교수로 문학을 연구하며 살아간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동료들이 대부분 전쟁에 참가할 때도 그는 학교에 남아 학문을 계속 이어나갔다.
부인 이디스와 큰 집을 사면서 이뤄지는 갈등도 그 안에 서재를 꾸며 놓음으로써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

 

오래전부터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비밀처럼 마음속 어딘가에 이미지 하나가 묻혀 있음을 깨달았다. 겉으로는 방의 이미지였지만 사실은 그 자신의 이미지였다. 따라서 그가 서재를 꾸미면서 분명하게 규정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자신인 셈이었다.(143쪽)

 

책 때문에 승진도 한다. 스토너가 직접 쓴, 그러나 아직 출판되지 않은 책 덕분에 대학에서도 종신교수가 된다. 하지만 그가 평생을 연구를 하며 깨달은 것은 ‘지혜’가 아닌 ‘무지’였다. 그는 적절한 순간에 타협해 앞날을 도모하기보다 순간에 부딪쳐 무너지고 마는 인생을 택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책을 읽듯 관망하며 보냈다. 그것이 그를 고독하게 만들지라도 스토너는 끝을 맺지 않았다.


하지만 스토너는 암에 걸려 종신교수가 누릴 수 있는 혜택을 다 받지도 못한 채 병상에 눕게 된다. 역시 죽음을 앞두고 그가 잡은 것은 자신의 책이었다. 그는 죽는 순간에도 탁자 위에 있는 책을 펼쳐 손가락으로 책장을 넘기는 짜릿함을 느꼈다. 그리곤 힘없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올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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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쓰기 모임을 끝내고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서, 스토너의 이야기는 ‘지적인 사람이 결정한 인생의 방향’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 노력했고, 전쟁보다 학문을 공부해 학교에 남는 길을 택했으며, 학생과 학과장과의 갈등이 있을 때도 자신만의 방법으로 묵묵히 걸어 나갔다. 누구나 여러 길에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한다. 그게 평탄하든 고난이든. 실패일지라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라는 걸, 스토너는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스토너>를 읽고

 

 


    

Posted by boo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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