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만났을 때, 우연히 나온 ‘경제학’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 책도 한 권 소개하면서 말이야. 좀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경제를 배워보고 싶다는 너의 반짝이는 눈을 기억하며 시작할게.
국내총생산, GDP로 운을 떼어 볼까. 작년에 우리나라 GDP 순위가 13위였어. 전 세계에서 경제력으로는 대략 13등을 한다는 말이지. 요새는 국력이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이라는 말이 있지. 그래서 GDP뿐 아니라 세계무역지수, 기업가정신지수 등 IMF, OECD, 통계청 등이 내놓는 경제지표들을 통해 국내외 사회가 어떠한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어. 경제를 잘 알면 정치, 사회, 외교 문제에 좀 더 밝아질 거야. 무엇보다 경제는 우리의 삶과 매우 밀접해. 우리가 점심에 ‘돈’을 내고 ‘밥’을 ‘사먹는’ 형태도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에 이뤄지는 ‘경제행위’니까.
경제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경제학자들이 경제를 수많은 통계와 지표로 수학이나 과학 속으로만 몰아넣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 그런데 내가 추천하는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은 조금 달라.
이 책은 <사다리 걷어차기>나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유명한 장하준이 썼어.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를 읽고, 그 전작들을 읽는 것이 좋아. <사다리 걷어차기>는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 또는 후진국들에게 자신들의 성장 신화를 강요하는 행태를 반대하는 경제서로,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있어야 몰입이 되는 책이거든.
이 책의 저자 장하준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주목 받는 경제학자야. 우리나라에서는 비주류경제학자를 자청하며 기득권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정책이나 제도에 대해 반론하는 주장을 내세우면서 주류경제학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지. 심지어 주류경제학인 자유시장 경제체제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나쁜 사마리아인>은 이명박 정부 시절 불온서적으로 지정되기도 했어.
하지만 이 책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그 이전의 책들에 비해 중도를 걷고 있는 느낌이야. 경제 입문서를 표방하며 만든 이 책은 이해하기 쉽고 편하게 풀어 썼어. 대중에게 좀 더 가깝게 가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가 느껴져.
1장, 2장에서는 경제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정의하는 것부터 자본주의가 시작한 1776년부터 현재까지 그 역사를 다뤄서 전반적인 경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 3장부터 5장까지는 현재 경제를 구체적으로 살피고, 학파를 설명해서 경제를 연구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그렇게 1부를 끝내고 나면 6장부터 12장으로 구성된 2부에서는 실제적인 경제 수치에 대해 이야기해. 생산, 금융, 일과 실업, 불평등, 정부의 역할, 국제적 차원 등을 개괄적으로 알려줘서 경제를 적용하고 쓰는 법에 대해 배울 수 있지. 1부가 역사라면 2부는 수학, 과학, 정치, 사회 분야라 할 수 있어. 아무튼 이 책을 한 권 다 읽고 나면 경제를 보는 눈이 생겨서 다른 경제서를 읽는 즐거움이 생길 것 같아.
이 책은 두께가 좀 두껍지만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어서 좋아. 하지만 내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사실을 비틀어 보는 시선’에 있어. 예를 들면 이런 식이야. 1981년에 미국 대통령이었던 로널드 레이건이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깎는 정책을 썼어. 부자들의 투자 의욕을 촉진해서 부를 창출하자는 논리지. 이를 ‘낙수효과 이론’이라고 해. 돈을 더 많이 축적한 사람들이 소비를 더 많이 해서 경제 전반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이론이야. 하지만 부자들의 세금을 깎는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도 깎고, 최소 임금까지 동결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한 정책이 되었지. 이에 대해 장하준은 다음과 같이 말했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논리이다. 왜 일을 더 열심히 하도록 하기 위해 부자들은 더 부자로 만들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일까?”(97쪽)
그러면서 “특정 경제학적 주장이 뜻하지 않게 일부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이 기준은 한 사람에게라도 피해를 주는 변화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기득권층에게 유리하다”라고 말하며 그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했어.
저자는 서문에서도 독자들이 경제학을 전문가들의 손에만 맡기지 않고, 경제학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인식하고,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제학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기를 권하고 있어.
경제학적 주장에 주로 정치적 색채가 드리울 때가 많잖아. 조금 전에 말한 낙수효과 이론처럼 그럴듯하게 보이는 논리지만 막상 알고 보면 부자들,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들을 시행할 때 말이지. 이것이 잘못되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는 시각은 중요해.
올해 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이란 책에 쓴 주장이 경제학계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것 기억하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부여해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했을 때 주류경제학계에서 많은 반발을 했고, 기득권층에서도 들고 일어났잖아.
지금의 주류경제학은 ‘신고전주의 학파’를 이야기해. 앞에서 이야기한 자유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옹호하는 부류지. 신고전부의 학파는 경제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전제해. 그래서 자유로운 시장 안에서 경제활동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보지. 여기서 말하는 이기심은 선한 이기심으로 경쟁을 통해 서로서로 잘살고자 노력하면 부가 늘어난다는 논리야. 하지만 나는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전제는 정말 경제적 인간으로 정의한 것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인간은 불합리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고, 합리적이라 여기는 기득권층들의 독주를 막기 위해서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봐. 그렇다고 마르크스주의는 아니야. 그저 적절한 자유와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칵테일처럼 경제학파들이 섞여야 한다는 장하준의 주장에 동의해.
경제학파는 ‘고전주의 학파’, ‘신고전주의 학파’, ‘마르크스 학파’, ‘개발주의 전통’, ‘오스트리아 학파’, ‘슘페터 학파’, ‘케인스 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학파’로 나뉘어져 있어. 이 학파들은 비슷한 성향의 학파끼리 뭉쳐 있거나 뚜렷하게 나뉘지 못하기도 해. 4장에 이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나와 있으니 읽어보면 도움이 될 거야.
다음 편지에는 그러한 학파를 비교해서 설명하고 경제를 보는 눈이 확장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소개할까 해. 그러기 위해 내가 더 많이 공부하고 책을 읽어야겠지. 너나 나나 먹고사느라 시간이 부족해서 책 읽는 시간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하지만 영화 보고, TV 보고, 다른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우리에게 이 일이 ‘기회비용’이 높은 일이길 바라. 그럼 이만.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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