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들이 생활과 의무로부터 탈출했다는, 가정과 친구들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모험을 향해 격렬하고도 찬란한 마음을 안고 도주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장편소설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
아일랜드는 인구가 450만 명이고, 국토가 우리나라의 80퍼센트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을 4명이나 배출해낸 문화 강국이다. 아일랜드가 문화로 세계에 영향력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어 때문이다. 원래 아일랜드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언어인 게일어를 썼다. 하지만 12세기부터 오랜 세월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모국어와 함께 식민지어인 영어를 쓰게 되었다. 영어로 쓴 문학과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쉬웠다.
아일랜드는 식민지시대를 거쳐 1921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완전한 독립이 아닌 반쪽짜리였다. 현재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아일랜드는 정식 국가 명칭 아일랜드공화국(Repubilc of lreland)으로 지정되어 나뉜다.
독립국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은 문화와 물류가 오가는 항구도시다. 아일랜드의 유명한 음악가와 문학가들이 대부분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만큼 더블린은 아일랜드 가운데서도 문화가 꽃피는 도시라 불린다.
천천히 떨어져 내리는 음악의 향연
길거리에서 기타를 메고 노래하는 남자가 있다. 실연을 당한 듯 원망과 배신감에 차 절규에 가깝게 노래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인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그의 노래에 귀 기울여주며 음악을 하는 그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두
사람은 음악으로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에 빠진다. 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2007년 ‘음악
영화’ 열풍을 몰고 온 영화 <원스(Once)>의 내용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바로 더블린이다.
<원스>로 우리에게 친숙하게 다가온 더블린 거리에서는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여러 장르의 뮤지션들이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의 악사’란 뜻의 ‘버스커(busker)’들과 더불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 행위예술가들도 있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 나누며, 춤추고 노래하기 좋아하는 호탕한 기질을 지닌 민족이라 그런지 더블린을 포함한 아일랜드에서는 많은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앨범 판매율 1위를 기록한 록 밴드 ‘U2’, 록발라드 그룹 ‘웨스트 라이프’, 영화 <반지의 제왕>의 삽입곡을 부른 ‘엔야’, 싱어송라이터인 ‘데미안 라이스’ 등 영국이나 미국 출신이라고 생각했던 뮤지션 가운데 아일랜드 출신이 꽤 많다.
더블린을 사랑한 작가들
음악뿐 아니라 문학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끼친 작가들도 많다. ‘나 이제 일어나 가리, 이니스프리로 가리/ 거기 나뭇가지 엮어 진흙 바른 오막집 짓고/ 아홉 이랑 콩을 심고, 꿀벌통 하나 두고, 벌들 윙윙대는 숲속에서 나 혼자 살리….’라는 시 <이니스프리의 호수>로 유명한 시인 W.B. 예이츠와 『고도를 기다리며』의 소설가 사무엘 베케트,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등이 그렇다.
그중 더블린에서 태어난 대표적인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다. 자신의 고향인 더블린 안에 ‘세계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던 제임스 조이스는 항상 더블린에 대해 썼다. 그는 첫 소설 『더블린 사람들』과 성장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그가 살았던 더블린 풍경과 사람들을 담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서술한 다소 난해한 장편소설 『율리시스』 역시 더블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흑맥주의 심장, 더블린
‘진짜 아일랜드 사람을 만나려면 펍(Pub)에 가라’는 말이 있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진정한 아일랜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때 그들이 마시는 맥주가 대부분 기네스(Guinness)다. 씁쓸하면서 구수한 향과 진한 루비색이 특징인 흑맥주 기네스는 아일랜드 사람들이 사랑하는 국민 맥주다.
기네스의 역사는 아일랜드 수도인 더블린에서 시작한다. 아서 기네스라는 사람이 더블린에 양조장을 만들어 1759년부터 맥주를 생산했다. 그는 쓰이지 않던 양조장을 9000년 동안 임대하는 계약서를 만들 만큼 맥주를 향한 집념이 강한 사나이였다. 이 양조장은 현재 ‘기네스 스토어하우스(Guinness Storehouse)’라 불리며 연 2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기네스 박물관이 되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매년 9월 넷째 주 목요일을 아서스 데이(Arthur’s Day)로 정해 기네스를 만든 창립자를 기린다. 이날 기네스 스토어하우스에 모여 맥주를 들고 건배를 하는데, 여기서 시작한 건배는 미국과 싱가포르 등 전 세계 47개국으로 이어진다. 그날은 아일랜드 맥주 축제이자 세계인의 맥주 축제다.
아일랜드 더블린은 보기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지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가 있고, 시와 음악이 가득한 도시다. 그리고 그곳에는 부드러운 거품과 진한 맛을 가진 흑맥주가 있다. 더블린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한 손에 맥주를 들고 거리의 악사들의 음악에 취해 걱정 없이 느긋하게 길을 걷게 한다.
- '문화가 흐르는 바다도시', 현대상선 <바다소리>, 2013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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