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기쁨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따사로운 가을날 낯익은 섬의 이름을 외며 바다를 헤쳐 나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쉬 천국에다 데려다 놓을 수 있는 것이다. 그곳만큼 쉽게 사람의 마음을 현실에서 꿈의 세계로 옮겨 가게 하는 곳은 없으리라.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중에서

 

그리스는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 남쪽에 위치하며, 반도와 섬으로 이뤄져 있다. 삼면이 바다
로 둘러싸여 서쪽은 이오니아 해, 북쪽은 알바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와 접하고, 동쪽은 에게 해(Aegean Sea)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에게 해는 그리스와 이집트, 터키 사이를 흐르며 고대 문명의 꽃을 피웠으며, 그리스 문화를 발달시킨 젖줄이다.

코발트 블루의 빛깔이 아름다운 에게 해에는 그리스의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그중 가
장 아름다운 섬은 신화와 낭만이 있는 크레타(Crete)다. 그리스의 가장 큰 섬인 크레타는 8,0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땅에 53만여 명의 사람들이 산다. 연평균 기온이 섭씨 19도로 대체로 온난하고 건조해 휴양지로 적합하다.

 

신화 속의 실재

크레타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 중 최고의 신 제우스의 고향으로 크노소스 궁전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다. 제우스의 아들이자 크레타 왕인 미노스에게 아내가 있었다. 그런데 아내가 포세이돈의 저주에 걸려 그만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낳고 말았다. 미노스는 이 괴물을 가두기 위해 미로의 궁을 만들고 젊은 남녀 7명을 괴물 아들에게 제물로 주었다. 이를 막기 위해 아테네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에 와서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쳤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 크레타의 크노소스 궁전이다.

그러나 전설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궁전이 1900년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번스(Authur Evans)의 발굴로 실제 존재했던 곳으로 밝혀졌다. 현재는 화려한 미노스 문명이 보존된 곳으로 남아 크레타에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꼭 거쳐 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이라클리온

크노소스 궁전은 크레타 북쪽 해안가에 위치한 이라클리온(Iraklion) 또는 헤라클리온(Heraklion)이라 불리는 도시에 있다. 이라클리온은 크레타의 가장 중요하고 큰 도시이자 항구이다. 국제공항과 항구가 있어 하루에도 수많은 비행기와 배들이 오고 간다.

항구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가면 이 도시에서 가장 큰 광장인 엘레프테리아스가 나온다. 이 광장을 주변으로 고고학박물관과 노천카페,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조금 더 가면 모로시니 분수가 있는 베니제루 광장이 나오는데 쇼핑거리와 함께 호텔, 레스토랑, 카페 등의 상가가 가장 많이 모여 있다. 걸으면서 여행하기 편하게 도로들이 거미줄 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이 도시의 큰 장점이다.

 

자유로운 그리스인 카잔차키스

이라클리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그리스인 조르바』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린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다. 그는 이라클리온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법학을 배웠고, 신문사 편집부에서 일을 하다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서 베르그송과 니체의 철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역사상 위인을 주제로 한 비극을 많이 썼다. 유럽의 철학문예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의 신념을 소설 속에 담아냈
다. 그의 묘비명에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라고 쓰여져 있을 만큼 그는 구속받지 않는 영혼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 에게 해로 여행할 기회를 얻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에게 해처럼 쉽게 현실에서 꿈으로 건너갈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고향인 크레타 섬을 소설 속 배경으로 자주 삼았다. 이 지역 사람들도 이라클리온 공항의 별칭을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으로 부를 만큼 카잔차키스는 크레타를 대표할만한 인물로 손꼽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라클리온에서 남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바르마리에는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이 있다. 그의 생가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되어 그의 책과 육필 원고, 연극^영화 대본, 가족 사진 등과 의상까지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그 밖에 유명한 작가는 길쭉하고 특이한 구도에 극적이고 어두운 색감으로 공간을 배치한 베네치아 화파로 유명했던 화가 엘 그레코(El Greco)가 있다.

 

올리브 나무 속으로

그리스는 포도와 올리브가 많이 자란다. 비가 자주 내리지 않아 뿌리가 깊은 포도와 올리브 나무만이 살아 남기 때문이다. 특히 일 년 내내 햇살이 좋은 크레타에서는 질 좋은 올리브가 많이 생산된다. 올리브 나무 재배량도 세계에서 단위 면적당 가장 많다.

사람들은 올리브, 포도와 함께 신선한 해산물과 올리브유로 만든 전통 음식을 즐겨 먹는다. 이 웰빙 식단은 장수 음식으로 손꼽힌다. 이 음식을 먹는 크레타 사람들은 미국인에 비해 암 사망률이 절반이고, 성인병에 의한 사망률도 낮다. 이런 식단을 궁금해하는 관광객들을 위해 크레타에서는 직접 배우고 먹을 수 있도록 시에서 프로그램을 마련해 진행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와 에게 해의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한 그리스 크레타. 미노스 문명의 유적들 속에서 신화와 역사를 살피는 즐거움이 있는 곳. 만약 어딘가로 떠날 계획이 있다면 ‘위대한 여행자’라고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크레타 섬에서 휴식을 취하며 고대 문명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 '문화가 흐르는 바다도시', 현대상선 <바다소리>,  2013년 12월호

 

Posted by boo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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