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란 무엇일까. 인터뷰는 단순한 문답의 모음,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인터뷰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만나 진행되는 문답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대화의 기록과는 명백하게 다르다. 동일한 목적, 사안을 가지고 쓰인 칼럼이나 원고와도 차별된다. 바로 거기서 인터뷰의 강점이 드러난다고 본다. 이를테면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문을 쓰고 읽는 것 보다, 오태양 인터뷰를 한번 하고 읽는 게 더 낫다. 훨씬 소통의 폭이 넓고 대중적이다. 말은 글보다 강하고 효율적이다. 하물며 인터뷰는 사람이 뱉은 말을 글로 치환해 기록하는 일이다. 인터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거기서 출발한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당신은 인터뷰가 “변명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여전히 그런가?

물론이다. 우리는 너무 멋대로 상대를 예측하고 재단하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선 그들의 변명을 열린 마음으로 들어줘야 한다. 거기서부터 소통이 시작된다. 갈수록 말하려는 사람들만 있고 들으려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다. 인터넷으로 쌍방향 소통이 이뤄졌다고들 하지만, 그저 말 뿐인 허상이다.


당신은 취재원에게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 하지만 모든 사안에 의견을 갖는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 아니겠나. 당신 자신은 그렇게 광범위한 견해를 갖고 있나?

그렇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내게 없기 때문에 그들에게 묻는 거다. 그들에게 모든 사안에 견해가 있길 강권하는 건 아니고, 그저 있는지 물어보고 귀담아 들을 뿐이다. 한국사회는 점점 더 확신에 찬 세상이 되 가고 있다. 모든 대중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 견해를 갖고 이를 표현한다. 긍정적인 측면만큼 부작용도 심각하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들으려하지 않고 자기 확신만 고집한다는 거다.


전문가의 견해를 따르는 것만이 옳은 행동이라는 식으로 오해될 수 있는 말 같다.

그런 건 아니다. 다만 평소에 그런 문제들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공부하고 대화해온 사람들의 의견을 좀 더 신뢰감과 존경감을 가지고 듣자는 거다. 거기에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지만, 요즘처럼 대 놓고 부정할 필요도 없는 거다. 예를 들어 최장집 선생이 최근 아프간 피랍사태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당장 낡은 진보 딱지 붙여가면서 괜한 비방만 산을 이룰 거다. 마광수 교수가 학력위조 사태에 대해 한마디 했다고 생각해봐라. 또 당장 노쇠한 변태가 뭐라 했다고 욕할 거라고. 정작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왜곡되거나 아예 논의의 대상에서 탈락해버리는 거다.


이제는 그저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정도의 당연한 태도조차 ‘관용’이라 불린다. 그게 어떻게 관용인가, 예의지. 바야흐로, 어른이 없는 세상이다.

정말 그렇다. 이 정권이 권위의식을 없애려한 노력은 인정하지만, 결국 권위 자체가 실종돼버렸다. 사회에 어른이 없고, 경청하려는 사람들도 없다. 모두 비웃음과 조롱과 폄하의 대상이다. 이게 뭔가.


당신 책들을 보면 특징적인 게, 한 사람을 반복적으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진중권, 김규항, 홍세화, 박노자, 한홍구, 류승완, 박찬욱, 신해철, 유시민... 그러고 보니 그러네.


뭐 때문인가? 섭외하기 편해서는 절대 아닐 테고(웃음).

그들은 당대 사회의 담론이라는 걸 만들어내는 생산자들 아닌가. 그들의 생각이 어떻게 미묘하게 변화하고, 혹은 고수되느냐를 기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훌륭한 기록이 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보러 “사람을 기록하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참 뿌듯한 말이다.


거듭 인터뷰에 응하는 취재원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인터뷰어로써 신뢰감을 줬다는 게 아니겠나.

한 때는 내 장점이 비굴함이라고 자랑하고 다닌 적도 있는데(웃음). 일단 취재원에게 당신에 대해 많이 알고 왔다는 성의를 드러내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물론 이런 건 “나 당신에 대해 많이 조사하고 왔고”라고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대화의 공기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거겠지. 내 이야기를 통해서 상대방의 신뢰를 찾는 거 보다는, 던지는 질문을 통해서 “난 당신의 아픔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말하려니 내가 무슨 인터뷰의 대가 같은데 그런 거 아니다. 사실 인터뷰에는 왕도도 없고 스킬 따위도 없다. 그저 남의 이야기를 잘 경청할 수 있다면, 자기 견해를 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편하게 할 수 있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과거를 기록하다보면, 이제 와 많이 달라진 사람에 대한 아쉬움도 각별할 것 같다.

단지 견해의 수정이라면 무방하지만, 옛날 그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를테면 지금도 여전히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을 들 수 있다. 그가 최근 내놓은 책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쿨 에너지>는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그는 이 책에서 김훈을 “한국 문학계 ‘쿨’의 대표주자”라고 소개한다. 김훈은 밥벌이에 관한 개인적, 정서적 상흔을 가지고 세상 진리 다 안 사람처럼 대중을 계도하려 한다. 계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계몽하고, 또 계몽당하니까. 문제는 그의 철저한 비관주의와 변혁에 대한 비웃음이다. 그의 해악은 지금에 이르러 더 커졌다. 막말로 한겨레도, 조선일보도 좋아하는 소설가 아닌가. 강준만은 애당초 김훈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논거로 삼아 김훈을 ‘쿨’하다고 말한다. 김훈의 대책 없는 비관주의, 보수적인 꼰대의식에 동참하는 꼴이다.


그렇게 변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보면 무슨 느낌이 드나? 지지를 철회하고 싶어지나?

판단력이 흐려졌거나 해석하는 능력이 떨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지를 철회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척 베리의 65세 은퇴공연 때, 그가 도중에 가사를 까먹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그는 3분의 1밖에 부르지 않고 특유의 오리걸음으로 그대로 퇴장해버렸다. 사람들이 어떻게 했을까? 환불을 요구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런 관객의 마음이다. 지금 어떤 실수를 했건, 그가 과거에 이뤄놓은 성취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은 인터뷰어가 있나?

없다. 건방지게 들릴지 몰라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인터뷰를 시작한 것도, 고무 받은 것도 아니다. 다만 아까도 언급했듯이 칼럼이나 논문보다 인터뷰가 더 강한 소통의 도구라는 확신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인터뷰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속으로 들어가서 보는’ 행위다. 그런 해석에 동의하나?

동의하고 말고를 떠나, 기본적으로 오만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을 겨우 두 시간 남짓 만나 대화를 나누고 어떻게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온전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제한된 자원을 활용해 취재원을 깊숙이 파악하는 것도 인터뷰어의 능력이 아닐까?

선택과 집중의 문제다. 물론 ‘속으로 들어가서 보는’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작업을 존중한다. 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사람의 속을 까발리는 것 보다는 그가 여태까지 해온 것, 그리고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한 덕목이라고 보는 거다.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하지 않았나. 가장 인상 깊은 인터뷰를 꼽는다면 뭐가 있을까.

김지운 감독 인터뷰가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원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고, 영화도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지로 드러내는 방식이지 않나. 말하면서 쭈뼛거리는 몸짓이나 조심스러운 말투, 그런 공기 속에서 이 사람이 날 진심으로 믿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건 문자로 표현하기 힘든 거다. 나중에 김지운 감독에 대한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들어갈 인터뷰를 진행해야 한다는 출판사의 말에 “내가 할 이야기는 지승호와 다 했으니 그 인터뷰를 책에 넣어 달라”고 했단다. 결국 <감독, 열정을 말하다>에 들어갔던 인터뷰를 50매 분량으로 줄여서 건네줬다. 인터뷰어로서 그것 이상 가는 행복은 없다는 생각이다.


최근에 한 인터뷰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장하준 교수와의 인터뷰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국가의 역할>의 저자이자 현재 캠브리지대 경제학 교수로 있는 분인데, 재벌을 박살낼 수 없다면 경영권을 보장해주면서 고용과 복지를 얻어내야 한다는 논리에 크게 공감했다. 인터뷰 자리에 참관인까지 들어와서 지켜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도 역시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인데, 요번에 만나고 나서 “다른 어떤 매체에서 인터뷰한 것보다 생산적인 시간이었다”고 말하더라. 과거 내가 노무현을 지지했었는데, 이 정권이 절차적 민주화에는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겠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에는 어떤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장하준 교수의 논리가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더 절박하게 매달렸던 것 같다.


상대의 언어에 탄복한 경험도 있을 것 같다.

신해철은 언어의 마술사다. 한참 이야기하다가 느닷없이 “아, 난 왜 이렇게 말을 잘 정리하는거야”라고 탄복하기도 한다(웃음). 아닌게 아니라 참으로 다양한 방면에 뚜렷한 입장을 가지고 조리있게 말 잘하는 사람이지. 그러고 보면 달변이라는 게 말이 많은 게 아니라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정리를 잘 한다는 의미인 것 같기도 하다. 진중권도 마찬가지다. 더 없이 해박하고, 논리가 정교하며, 날카롭기 이를 데 없다. 한홍구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다. 매우 사회과학적인 주제를 가지고 마치 옛날이야기 들려주듯이 술술 풀어낸다. 듣고 있으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니까.


대화를 나누는 중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느꼈던 적이 있나?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대부분 내가 몰입과 집중을 덜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본의를 오독하는 거지. 이번에 <영화, 감독을 말하다>를 작업하면서 임상수 감독과의 인터뷰가 상당히 힘들었는데, 그것 역시 내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한들 상관없다. 인터뷰는 기록이다. 그의 거짓말은 기록되고 있다. 그걸 내가 중간에서 개입해 교정시켜줄 이유는 없다고 본다. 그건 그의 문제다.


방송 인터뷰 해봤나?

작년에 KBS 파워인터뷰에 (진)중권이형 대신 패널 토론자로 출연한 적이 있다. 녹화 끝나고 PD랑 낮술까지 먹어가며 잘 해보자고 했었는데, 이상하게 한 회 만에 바로 잘렸다. 얼굴이 방송에 부적합했던 건지.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 왜 잘랐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웃음).


방송인터뷰와 지면인터뷰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나?

방송인터뷰에는 인터뷰어와 취재원 사이에 카메라의 시선이 끼어든다. 여기에 방송에 맞는 호흡의 묘를 실현해야 하는 추가적인 (정서상의)자원이 소모된다. 방송이나 지면이나 인터뷰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나처럼 교감과 신뢰의 문제에 대해 집착하는 인터뷰어에게는 부적합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열 두 권의 인터뷰집들 가운데 가장 아끼는 책이 뭔가?

<감독, 열정을 말하다>와 <금지를 금지하라>, 그리고 <7인 7색>이다. <7인 7색>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분명한 자기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모은다는 기획으로 박노자, 이우일, 유시민, 진중권, 노회찬, 하종강, 김규항을 인터뷰했던 책이다. 당시 지적됐던 한국사회 문제점들이 요즘에 와서 더욱 가열되는 양상을 띠고 있는 것 같다. <금지를 금지하라>는 ‘금지와 차별에 저항하다가 집단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모은다는 기획이었다. 박원순, 조정래, 마광수, 문정현, 정태인, 이상호, 최승호를 인터뷰했다. 사실 이상호 기자를 위한 기획이나 다름없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각별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봉준호, 류승완, 김지운, 변영주, 윤제균, 장준환, 조명남을 인터뷰한 <감독, 열정을 말하다>는 좀 더 대중적인 영역의 작업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기획이다. 내 예상보다 인터뷰 과정이 훨씬 즐거웠고, 원래 취지에도 잘 부합됐던 것 같다.


인터뷰집을 내는 것만으로 생활이 힘들지 않나.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감내해가면서 인터뷰 작업을 지속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박찬욱 감독에게 물었다. 당신 영화를 보고 있으면 관객이 더 좋아할 수 있는 부분에서 그냥 힘을 쏙 빠지게 만드는 엉뚱함이 있다고. 그거 사실 흥행에 대한 공포감, 반발 심리 아니냐고 말이다. “그런 것 까지는 아니지만 흥행을 방해하는 요소인 건 맞다”고 하더라. 나도 그 정도의 강박인 것 같다. 물질적인 행복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게 사실이다. 이게 또 분열이지. 가난이 그렇게 싫은데, 또 한 편으론 가난을 추구하니까.


사실 지금 정도면 어느 매체에 소속돼서 일을 해도 되지 않나.

주류 매체에 속하지 않고 개인적인 인터뷰집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다. 내 알량한 상징자본을 가지고 돈을 버는 쪽으로 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어느 매체에 소속되면 내가 원하는 인터뷰만, 그것도 몇 개월씩 준비해서 하기는 힘들지 않나. 그렇지 않다면 다 소용없다. 난 인터뷰가 좋다. 죽을 때까지 이것만 하고 싶다.


당신을 그렇게 행복하게, 또 초라하게 만드는 인터뷰의 진짜 매력이 뭘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취재원들을 자꾸 만나다보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사회에 던져진 한 편의 인터뷰는 결국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 어떤 사안에 대한 대안은 무엇인지, 그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 견해를 듣다보면 언젠간 내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겠지. 그럼 난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하지만 이런 걸로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있으니, 결국 정말 좋은 사람은 못 될지도 모르겠다(웃음).

 

 


허지웅 (GQ 2007년 10월호 중에서)

출처: 인터뷰어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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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o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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