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이폰 메모를 보다가 2년 전 내가 쓴 글을 보게 되었는데,

뭐랄까. 과거의 나를 소환한 기분이다.

글로 남기는 것은 이렇게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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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고 있다 혹은 삼십대가 되었구나를 느낄 때


스물 여덟 살에 들어온 이 회사에서 내 가치관과 맞지 않은 회사의 비전과 미션에 불안하고 스트레스 받는 나날들이다. 벌어먹는 것의 비루함. 그럼에도 이 안에서 내 커리어가 쌓여감에 따라 내 스스로 프로다운 모습이 보일 때, 그리고 조직에 대한 애정이 생길 때 나이가 들었구나 싶다.

영영 회사라는 곳에 속박되지 못할 것 같더니 어느 부분 순응하고 산다. 어눌하고 서툴었던 것들이 손에 익고 능숙해져 간다. 이런 것이 커리어를 쌓는 것일까. 그래도 회사에 물들지는 말아야겠다.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으니까. 투쟁해야 하는데, 그것은 드러나지 않게 매우 은밀하게 움직여야겠다. 그래서 글쓰기를 놓지 않고 늘 다듬고 길어야 한다. 이런 고민 때문에 이 새벽에 잠을 못 자겠다.

분명 스물 여덟 살에서 스물 아홉 살이 되었을 때는 몰랐는데, 스물 아홉 살에서 서른 살이 되니 부쩍 나이 든 내 모습이 보인다. 이제 내 안의 이십대는 영영 사라져버렸다. 정말 이젠 싱그럽고 유치하며 부서져버릴 것만 같은 이십대의 나는 없다. 나는 조금 강해진 만큼 저멀리 달아난 젊음 때문에 조금 슬프다.

 

 


서른살의 봄에 이십대를 진짜 떠나보내며...

 

이십대는 흔들리는 나이다. 첫 키스, 첫 술, 첫 남자, 첫 대학, 첫 밥벌이, 첫 드라이브, 첫 선거, 첫 직장... 모든 것이 처음인 것이 많다. 부서질 것만 같은 싱그럽고 아름다운 이십대. 젊고 약한 것들이 내면에서 무수히 많은 요동을 일으키며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반면에 이십대에 많이 흔들린 사람은 삼십대에 요동이 적다. 처음이 아닌 것은 익숙하고 능숙하다. 경험치라는 것은 시간이 주는 선물이다. 오직 그 시간들을 버텨낸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나이 먹은 사람들의 특권. 단호해질 수 있는, 오롯이 자신이 들어서기 시작하는 나이.

서른. 혼자서 이립할(설) 수 있는 나이. 이제 첫 결혼, 첫 출산, 첫 육아 등 많은 것들을 겪고 나면 더 단단한 삼십대를 보낼 수 있겠지. 고작 서른의 초입에서 삼십대를 정의할 수 있겠느냐마는 새벽에 생각나는 떠오르는 그것은 별로 벗어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서른, 이제서야 반갑다고 인사한다. 서른의 봄. 이 또한 젊고 아름다운, 내 나이에게. 내일이면 또 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나에게 서른 살이란?


무모한 프로젝트나 아이디어를 내도 이십대니까 봐줄 수 있는 뻘짓들이 이젠 용인되지 않는 그런 나이. 내 말과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 사회에서도 이젠 먹을만큼 먹은 나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 꼭 그럴 필욘 없지만 사회에 맞춰야 철없다는 소리 듣지 않는 나이. 이젠 누가 사주지 않아도 내가 먹고 싶은 거, 사고 싶은거 다 살 수 있는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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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o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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